'배터리’라고 하면 대부분 리튬이온 배터리를 떠올립니다. 스마트폰이나 전기차에 들어가 전기를 담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그 장치입니다.
정작 산업 현장이 소비하는 에너지는 전기보다 열인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공장이 쓰는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스팀과 고온 열이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이 열을 전기로 바꾸지 않고 열 그대로 담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장치가 열배터리이고, 기술 용어로는 열에너지 저장(Thermal Energy Storage, TES)이라고 부릅니다.
이름은 하나지만 열을 담는 방법까지 하나인 것은 아닙니다. 어떤 방식으로 담느냐에 따라 꺼내 쓸 때의 성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방식을 고르는 일이 곧 어떤 공정에 쓸 수 있느냐를 정하는 일이 됩니다.
열배터리는 무엇을 저장하는가
전기 배터리와 열배터리의 차이는 이름 그대로여서, 한쪽은 전기를 담고 다른 쪽은 열을 담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꺼내 쓰는 형태입니다.
공장이 필요한 것이 열이라면 전기로 저장했다가 다시 열로 바꾸는 과정에서 변환 손실을 감수해야 하지만, 열을 열 그대로 저장하면 그 단계가 아예 없습니다. 저장 매체도 물·돌·소금처럼 흔한 물질이어서, 대용량으로 오래 저장할수록 비용 구조가 유리해집니다.
두 기술의 장단점을 정면으로 비교한 내용은 다음 글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① 현열 저장 — 온도를 올려서 담는다
물질의 온도를 높여 열을 담아두었다가 식으면서 나오는 열을 다시 쓰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입니다. 물, 돌, 모래, 특수 벽돌, 콘크리트, 용융염(molten salt) 등이 저장 매체로 쓰이는데, 원리로 보면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담아두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구조가 단순하고 재료가 저렴한 덕분에 현재 산업 규모로 가장 널리 쓰입니다.
다만 성질상 피하기 어려운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열을 꺼낼수록 저장 매체의 온도가 계속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뜨거운 열이 나오다가 뒤로 갈수록 미지근해지기 때문에, 예열이나 건조처럼 온도가 다소 변해도 되는 공정에는 문제가 없지만 정해진 온도를 지켜야 하는 공정에서는 이것이 그대로 제약이 됩니다.
② 잠열 저장 — 상태가 바뀔 때의 열을 쓴다
물질이 고체에서 액체로, 액체에서 기체로 상태가 바뀔 때 흡수하거나 내보내는 열을 이용하는 방식이며, 이런 물질을 상변화 물질(PCM, Phase Change Material)이라고 부릅니다. 얼음이 녹으면서 주변의 열을 빨아들이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성질이 하나 나옵니다. 상태가 바뀌는 동안에는 온도가 거의 변하지 않아서, 얼음물은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0°C를 유지합니다. 이 성질 덕분에 잠열 저장은 방전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비슷한 온도로 열을 내보낼 수 있고, 같은 부피에 담을 수 있는 열량 역시 현열 저장보다 큽니다.
③ 열화학 저장 — 화학반응에 담는다
열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가역 화학반응에 에너지를 담아두는 방식으로, 저장 밀도가 세 방식 중 가장 높고 원리상 열 손실 없이 장기간 보관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다만 아직 상용화 초기 단계여서 산업 현장에 대규모로 적용된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세 방식 비교
| 방식 | 저장 원리 | 방전 중 온도 | 성숙도 |
|---|---|---|---|
| 현열 | 매체의 온도 상승 | 점차 하강 | 산업 규모로 널리 사용 |
| 잠열 | 상변화(고체↔액체 등) | 거의 일정 | 적용 확대 중 |
| 열화학 | 가역 화학반응 | 반응 조건에 따름 | 초기 단계 |
산업에서 갈리는 것은 '얼마나’보다 ‘어떤 온도로’
열배터리를 검토할 때는 저장 용량부터 보게 되지만, 산업 공정에서 실제로 발목을 잡는 쪽은 꺼내 쓰는 온도가 일정한가입니다.
공정에 들어가는 열의 온도가 들쭉날쭉하면 제품 품질이 흔들리거나 온도를 맞추기 위한 보조 설비가 따로 필요해집니다. 저장한 열의 총량이 아무리 충분해도 실제로 쓸 수 있는 구간이 앞부분뿐이라면, 실효 용량은 사양서에 적힌 숫자보다 한참 줄어드는 셈입니다.
GIGAette가 개발하는 IsoTES®는 이 지점을 겨냥한 시스템으로, 하나의 탱크 안에서 방전 내내 일정한 출력 온도를 유지하는 구조를 목표로 합니다.
열에너지 저장의 기본 개념과 탈탄소화에서의 역할은 다음 글에서 다뤘습니다.
결론
열배터리는 하나의 기술이라기보다 세 갈래의 접근입니다. 현열은 단순하고 저렴한 대신 온도가 떨어지고, 잠열은 온도를 붙잡아주는 대신 매체 선택이 까다로우며, 열화학은 잠재력이 크지만 아직 이릅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결국 공장이 어떤 열을 필요로 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공정에 어떤 방식이 맞는지 함께 짚어보고 싶으시다면 기술 미팅을 신청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