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리스본의 한 맥주 공장에 들어서면 시원한 맥주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자욱한 스팀입니다. 살균과 가열, 세척을 거치는 내내 엄청난 양의 고온 스팀이 필요하고, 지금까지 대부분의 양조장은 그 스팀을 얻으려고 가스를 태워왔습니다. 이 공장은 이제 가스 밸브를 잠그고 태양광과 열배터리로 맥주를 빚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맥주 한 잔에 들어가는 열
맥주 양조가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쓴다는 사실은 생소할 수 있지만, 맥주가 손에 쥐어지기까지는 여러 단계의 열처리를 거칩니다.
- 발효 — 효모가 활동하기 좋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 저온살균(파스퇴르 공법) — 신선도와 유통기한을 위해 가열이 필수입니다
- 세척(CIP) — 거대한 양조 탱크를 청결하게 유지하는 데 뜨거운 물과 스팀이 들어갑니다
이 때문에 대형 맥주 공장의 스팀 소비량은 상당한 수준이고, 그대로 가스 비용과 탄소 배출 부담으로 돌아옵니다.
태양광만으로는 왜 안 되는가
친환경 전환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안은 태양광이고, 포르투갈처럼 일조량이 풍부한 나라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정적인 걸림돌이 하나 있습니다.
태양은 낮에만 뜨지만, 맥주 공장은 24시간 스팀이 필요합니다.
해가 진 밤이나 흐린 날에 에너지가 끊기는 간헐성은 생산 라인을 멈춰 세울 수 있는 약점입니다. 낮에 만든 전기를 열로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한 순간에 꺼내 쓰는 장치가 반드시 따라붙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세 회사가 손을 잡은 방식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열배터리 기업 론도 에너지(Rondo Energy), 포르투갈 종합 에너지 기업 EDP, 그리고 하이네켄(Sociedade Central de Cervejas)이 협력했습니다.
구조 자체는 직관적입니다. EDP가 공급하는 낮 시간대 태양광 전기로 론도의 특수 벽돌 열배터리를 초고온으로 달구어 두었다가, 밤이 되면 이 벽돌이 품은 열로 공정 스팀을 만들어 하이네켄 공장에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리스본 공장에 도입되는 이 시스템은 100MWh 규모로 2027년 본격 가동 예정이며, 음료 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열배터리 프로젝트입니다. 혁신성을 인정받아 유럽투자은행(EIB)의 지원도 받고 있습니다.
기존 방식과 무엇이 달라지나
| 구분 | 가스 보일러 (기존) | 태양광 + 열배터리 |
|---|---|---|
| 에너지원 | 천연가스 | 재생에너지 전기 |
| 탄소 배출 | 연소 시 직접 배출 | 운전 중 직접 배출 없음 |
| 연료비 | 가스 가격 변동에 노출 | 낮 시간대 저가 전기 활용 |
| 24시간 공급 | 가능 | 열 저장으로 가능 |
| 공정 개조 | — | 스팀 형태가 같아 기존 설비 활용 |
| 규제 대응 | CBAM·탄소가격 부담 증가 | 내재 탄소 감축으로 부담 완화 |
핵심은 마지막 두 줄입니다. 열배터리는 기존 공정이 쓰던 것과 같은 형태의 스팀을 공급하기 때문에 생산 라인을 새로 설계할 필요가 없고, 그러면서 제품에 담기는 내재 탄소를 줄여 탄소 규제 부담까지 함께 낮춥니다.
왜 이 사례가 중요한가
수백 년 동안 가스를 태워 스팀을 만들던 맥주 공장이 태양 빛과 저장된 열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 공장의 비용 절감을 넘어, 탄소 배출의 사각지대로 불리던 산업용 열에너지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산업 공정열이 왜 탈탄소화가 어려운 영역인지, 열에너지 저장이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다음 글에서 정리했습니다.
결론
기후 대응은 새로운 발전소를 짓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낮과 밤의 격차, 그리고 전력과 열의 격차를 얼마나 영리하게 메우느냐가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가릅니다. 하이네켄 사례는 그 격차를 메우는 기술이 이미 상업 프로젝트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줍니다.
GIGAette는 산업 공정이 필요로 하는 일정한 온도의 열을 저장하고 공급하는 방향의 해결책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출처
